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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년 (220102)



소소하게 말일을 친구들과 보내고, 어제는 차분히 쉬다 보니 신년인사가 조금 미뤄졌다. 형식적인 관행은 싫어하지만, 내 의지로 몇 글자 끄적이고 싶었다.


2021년 한 해는 일을 열심히 했다. 나와 맞지 않는 일이라는 판단으로 그만뒀던 일을 다시 시작하게 됐을 때는 책임감이 전보다 더 컸다. 이 일을 다시 시작할 수 있었던 이유는, 나의 현실적인 문제를 해결하기 위함도 있었지만, 무엇보다 내가 더 이상 ‘나의 경험’과 ‘나’를, 그리고 ‘나의 성향’과 ‘나’를 동일시하지 않으면서 가능했다.


나는 더 이상 내 성별도, 미국 사람도, 한국 사람도, 나의 피부색도, 나의 몸도 아니다. 나는 더 이상 어디에 사는 누구도, 어디서 공부한 누구도, 누가 인정한 누구도, 무엇을 만든 영화감독도, 연출감독도 아니다. ‘나’는 이 모든 것들을 경험하고 있는 독특한 영혼이고 또 ‘모두와 연결된 하나의 영원한 의식’이다. (당신도 마찬가지다.) 이렇게 ‘나의 경험’과 ‘나’를 분리시키는 게 가능해지면서 내가 경험하는 모든 것들에 대한 부담감이 덜해지고, 한때 ‘고되고 하기 싫었던 노동’은 이제 '꽤 할 만한 무엇’이 되었다.


나는 태생적으로 양지보다는 음지를 선호하고, 인사이더보다는 아웃사이더이며, 어떤 그룹에 속해 있어도 구석자리가 편한 ‘성향’이다. 단위를 불문하고 소속감과 위계를 경멸하고, 나를 옥죄는 그 무엇도 싫어한다. 이런 내가 사회적 동물인 한 ‘인간’으로써 기능하기란 참으로 쉽지 않은 노릇이다. 하지만 이런 ‘나의 성향’ 또한 ‘나’는 아니라는 것을 지금은 안다. (나의 ‘성향’은 ‘나의 몸’ 또는 ‘나의 오감’의 작동 방식일 뿐 절대 ‘나’는 아니다.) 따라서 놀랍게도, 나는 지금 내가 하고 있는 일을 이제 나름 즐길 수 있게 됐는데, 이런 ‘나의 성향’을 존중해 주는 나의 작업실 동료들, 그리고 나와 함께 일 하는 재능 있는 업계 동료들의 많은 도움이 있었고, 그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고 있다. 나는 극도로 개인적인 ‘성향’이지만 다른 사람들과 ‘함께’ 그리고 ‘같이’ 무엇을 만든다는 것은 ‘나’에게 항상 경이롭고 감사한 ‘경험’이다.


2021년 한 해는 쇠약에서 건강으로의 전환을 이뤄냈다. 2020년은 ‘뻥로나’를 시작으로 개인적으로 다사다난했고, 작년에는 이 복잡했던 상황들 속에서 스스로를 구출할 아웃렛이 절대적으로 필요했다. 일에 집중했고, 내일은 없는 쇼핑을 했으며, 술을 많이 마셨고, 계속해서 새로운 관계를 원했다. 지난 상처가 채 아물지도 않았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혹은 알면서 무시한 채 몇 날 며칠을 보냈다. 일은 금방 번아웃이 왔고, 온 집안은 물건과 와인병들로 쌓였으며, 내 옆에는 결국 아무도 없었다. 방치해둬 심하게 덧난 상처는 종국에는 터져 버렸고, 나는 한바탕 미친 듯이 울었다. 그렇게 미련하게나마 나는 나에게 ‘진짜 변화’가 절실히 필요함을 깨달았다. 일과 삶에 밸런스를 맞추려고 노력하기 시작했고, 쇼핑은(?), 술은 거의 끊었으며, 어떤 관계도 원하지 않았다. 책을 다시 읽기 시작했고, 운동을 시작했으며, 지금 모두에게 가장 중요하지만, 한때 ‘나 또한’ 쳐다보기도 싫었던 현 로나 상황에 대한 폭로를 재개했다. 나는 그렇게 쇠약해진 스스로를 다시 일으켜 세웠다.


2022년 한 해는, 개인적으로도, 우리 모두에게도 또다시 쉽지 않은 한 해가 될 것이다. 앞으로 글로벌 컬트 세력의 ‘어젠다’는 더 노골적으로 펼쳐질 것이고, 상황은 이미 심각하지만 더욱더 심각해질 것이다. (대선은 ’찢통령’이 하수인으로 세워지고, 그가 대한민국을 전례 없던 통제국가로 전락시키려고 온갖 ‘찢력’을 과시할 것으로 예상한다.) 하지만 상황이 계속 악화될 수록 반작용 또한 지금보다 더 거세질 것이다. 접/미접 상관없이 우리는 분명 ‘하나’고 ‘함께’ 어두운 터널을 지나고 있다. 우리의 지금 이 ‘출산의 고통’은 아직 까마득해 보이지 않지만, 언젠가 꼭 도래할 더 밝고 건강한 ‘새로운’ 미래를 위해 불가피한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작년 한해 내 개인사가 그러했듯 말이다.